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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이완용의 유산 2025년 일부 매각과 영화'파묘'(破墓)의 모티브가 된 이유카테고리 없음 2025. 4. 30. 15:28
친일파 이완용
1.2025년 4월 이완용 증손자의 북아현동 30억 매각 사건2025년 4월,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이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545•546•608번지 일대 2354㎡(약 712평) 땅을 매각해 약 30억 원의 매매대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땅은 원래 이완용이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이었으나, 해방 후 정부가 환수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이윤형이 국가를 상대로 토지반환청구소송에서 승소해 돌려받은 뒤 팔아치웠고, 이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땅은 현재 북아현2구역 재개발 사업지로, 지하 3층~지상 29층, 28개동, 2320가구의 대단지 아파트로 변모할 예정입니다.
2.이완용이 후손에게 남긴 재산의 규모
1) 전국에 걸친 방대한 부동산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전국에 1801필지, 총 2233만4954㎡(약 676만8168평)의 부동산을 소유했습니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7.7배에 달하는 규모로, 당대 최대의 부호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북 익산, 경기 용인, 서울 인사동 등 전국 각지에 땅을 보유했으며, 서울에도 10여 채의 대저택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2) 대부분 해방 전 현금화
이완용은 해방 전 토지의 98~99%를 일본인 지주 등에게 팔아 현금화했습니다. 1920년대 초 기준 은행 예금 등 현금 자산만 300만 원(현시가 약 600억 원)에 달했고, 실제 재산은 수천억 원대로 추정됩니다216. 해방 이후에도 일부 부동산이 후손 명의로 남아 있었으나, 대부분 매각되거나 환수되지 못했습니다.
3) 후손에게 대물림된 재산
이완용의 손자 이병길, 이병주 등은 일제강점기 귀족 작위를 물려받고, 해방 후에도 남은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매각했습니다. 증손자 이윤형은 1990년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북아현동 토지를 돌려받아 30억 원에 매각했고, 용인 등지의 소규모 땅도 일부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3. 이완용의 유언
이완용은 1926년 사망 전 아들에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이니 너는 친미파가 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현실적으로 살아남으라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유언은 후손들이 해방 이후 변화하는 정세에 적응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습니다.마지막 이완용 묘의 모습 영화 파묘의 한장면, 출저 쇼박스 4. 이완용의 묘가 없는 이유
1) 묘의 위치와 훼손 과정
이완용은 죽은 뒤 전북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미륵산 줄기 명당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부터 매국노로 지탄받으며 묘가 지속적으로 훼손됐고, 해방 이후에는 더 심각한 훼묘와 방치가 이어졌습니다.2) 파묘와 유골 처리
결국 1979년, 이완용의 증손자 이석형 등 후손들이 인부를 동원해 묘를 파헤치고 유골을 간이 화장한 뒤 인근 장암천에 뿌렸습니다. 부인과 아들 부부의 유골도 함께 처리됐습니다. 관 뚜껑은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팔렸고, 금니 등 유품도 처분됐습니다.
3) 묘를 없앤 이유
후손들은 "오래 둘수록 치욕만 남는다"며, 매국노라는 손가락질과 지속적인 훼손, 관리의 어려움, 그리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묘를 없앴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이완용은 전국에 6~7개의 가짜 묘를 만들어 보복을 피하려 했으나, 모두 들통나 훼손됐습니다.4)현재 묘의 흔적
이완용의 묘가 있던 자리는 현재 채석장으로 변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매국노의 말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